2020년 11월 8일 일요일

[일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1.8. 202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1.8. 2020)


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난 주말 쿠엔틴 타란티노의 'D장고'를 보았고 이번 주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았다. 남부 함락 기념 시리즈. 

둘 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렇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정말 대단하더라. 뒤져보니 제작년대는 1930년대 후반. 영화산업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시대에 이걸 만들다니. 당시에 엄청난 돈을 들인 대작이었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흥행 올 타임 1위라고. 러닝타임 4시간에 오버츄어 인터미션도 있는 아주 고전적인 영화.

1930년대면 씨빌 워 끝난지 6-70년 후. 남부의 옛 기억을 가진 세대나 그 자녀세대는 온전히 남아있었을 것이다. 소설 원작자 마거릿 미첼은 조지아 아틀란타주 출신, 아버지가 남부 역사에 정통한 변호사였다. 최근에 와서 영화의 인종 차별적인 부분이 논란이 되었고, 지금 봐서는 어이없는 부분도 많으나 마가렛도 나름 진보적인 인사였다고. 남부의 백인우월주의는 1960년대까지도 남아있다가 간신히 민권법이 통과되며 개선되기 시작했으니, 당시에 많은 미국인, 특히 남부인들의 잃어버린 옛 문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휴브님도 한번 지적하신 적이 있지만, 미국 남부를 보고 있으면 이게 진짜 미국의 본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개봉 90년뒤 2010년대에 타란티노의 장고가 나타나 마치 타라와 같은 디카프리오 캔디스의 농장을 샷건으로 조져버렸다ㅋㅋ 2020년 대선에 드디어 제임스타운의 버지니아에 이어 아틀랜타의 조지아까지 블루스테이트가 되었으니 그 낭만적, 귀족적인 남부 문명은 이제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졌군요. 

링크는 마가렛 미첼의 생애. 제멋대로여서 속을 썩인 첫 남편의 이름은 무려 '레드'. 그리고 그와 이혼 후 결혼한 둘째 남편 존은 전남편 레드와도 친구였던, 애슐리같은 자상한 사람이었다고.



2. 남/북부 대신 도시/시골

미국에서 더 이상 남부/북부의 개념은(최소한 정치를 설명하기에는) 사용가치가 많이 떨어졌는데 존경하고 친애하는 박 위원님께서 관련된 이야기를 블로그에 정리해주심. 미국은 다들 아는 것 처럼 도시/써버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글로벌라이즈드 벨류체인의 수혜자인가 피해자인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 이번 4년은 도시민들이 이겼으니 Political Correctness가 다시 흥할 수도.

나는 10년 전 여의도 처음 들어왔을 때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기분이 들었는데 존경하는 애널리스트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세미나도 요청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팬클럽이 아이돌을 만났을 때 뭐 그런 기분이었을거다. 당시에는 그랬었어.



3. Me Business

김미경씨에 대해 여러가지 비판하는 말들도 많지만, 트렌드에 밝고 비즈니스 감각이 있고 열심히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는 모습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번에는 Me business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나 자신(me)을 사업 모델로 만드는 일(business)"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발전 방향이 아닐까.


"린(Lean) 스타트업’으로 가볍게 시작하신 것도 그렇고, 될 것 같은 모델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 시장에 던지고, 반응을 봐서 안 되는 건 버리고 되는 건 과감하게 투자하신 것도 그렇고"

"내가 꽂히고, 뭔가 해보면 될 것 같다는 감이 오는 일들은 일단 하고 본다. 대신 시작은 매우 가볍고 작게 하는 게 원칙이다."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미 비즈니스’를 시작해야 한다. 취미로 가볍게 시작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작고 소박하게나마 시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취미로 글을 썼으면 글쓰기 플랫폼에 자신의 글을 올려 보고, 공부를 시작했으면 몇 명이라도 가르쳐 봐야 한다."

굳이 내가 블로그에 글을 꾸역꾸역 써서 올리는 것도 Me Business의 시작인 셈.



4. 아버지와의 샌 프란시스코 여행

작년 이맘 때 아버지와 둘이서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일본 여행을 가볍게 다녀올까 했었는데, 지난해 하반기 NO Japan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아들과는 달리 민주당 지지자인 아버지는 일본 여행은 영 싫으시다고. 대체재로 대만 여행을 갈까 알아봤으나 다들 대만 여행을 선호하는 통에 비행기표가 40만원을 넘어버렸으니, 이참에 미국이나 한번 다녀옵시다 하고 60만원대 아시아나항공권을 싸게 끊어서 예정에도 없던 미국 여행을 다녀 온 것이었다. 나는 '18년에 미 서부를 돌았으니 1년만에 다시 간 것이고 아버지는 첫 미국 서부 여행.

아들들이 으레 본가에 소홀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정도를 좀 지나쳤으니 친구들이 나를 보고 '후레자식'이라 부를 정도였던 것이다. 받을 지원은 다 받아놓고서는, 명절 행사를 '튀김에 절하기'라고 비꼰다거나, 원하시는 출산도 별로 생각이 없고... 하나에서 열까지 맞는게 없다. 지방에서 공기업 40년을 다니시고, 도시에서 살았으면서도 아직도 농촌의 감수성을 지니신 아버지와, 서울도 답답해 죽겠는 나와는 참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그 여행은 지금까지도 내가 아버지께 가장 잘 해드린 일이 아닐까 싶다. 샌프란시스코 언덕도 올라가보고, 자전거를 타고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넘어갔고, 알 카트라즈 섬도, 태평양 해안도 보고 왔지만 어떤 코스를 갔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제 아버지께서, 1년 전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고, 아직도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을 한다고, 1년을 기념하며 연락을 주셨다. 꼭 한번쯤 인생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서 여행을 다녀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더 늦어지기 전에.



5. 아내님 영전하심

아내가 글로벌 기업의 중요한 자리로 영전하는데 성공했다. 현실 능력자인 아내는 어쩌다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여튼 나는 아내를 트위터를 통해 만났다. 내가 현실에서는, 특히 말빨로는 매력이 있는 인간같지는 않은데 역시 글이 실물보다 나은거 같고 결혼도 트위터를 통해서 했으니 글빨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친한 친구가 결혼 준비를 하며 드레스를 보러 갔다길래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고르던 때가 생각이 났다. 당시 플래너가 연결해준 업체에서 웨딩드레스를 4번 입어볼 수 있는데 아내는 드레스를 한번 입어보고는 그게 제일 낫다며 바로 결정해버렸다. 직원들이 말려서 3번 더 입어봤는데 결국 첫번째 드레스가 제일 나았음. 

아내랑 살면 재밌는 일이 많다. 이번에는 또 비스포크 냉장고 새 제품을 정가의 절반 값 정도에 줏어왔다. 애널리스트 친구 하나는 "형은 도대체 집에서 뭘 하시는 거에요ㅋㅋ" 라고 하더라. 아내와 같이 살게 되고 나서 인생의 많은 고민이 사라졌고,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으며, 지금의 삶이 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고 느낀다. 함께 오랜동안 즐겁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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