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6일 일요일

흑사병과 인플레이션

 <흑사병과 인플레이션>


여러 역사책들을 뒤적뒤적 해 보면서... 사실 흑사병과 그 이후의 인플레이션, 농민 반란을 생각해보면 이번의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아예 예측 못할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의 사례를 찾아보면 도시는 사람들이 텅텅 비었고, 농민들은 일하기를 거부하고 신분 상승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곡물가격은 흑사병 발병 이전부터 올라 있었는데 인구가 증가한 반면 기근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근이 흑사병의 확산에 일조했습니다.

1300-1350의 인플레이션은 흑사병으로부터의 공급 차질 때문이었고, 1550의 인플레이션은 신대륙 은의 유입으로 인한 화폐적 현상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CPI상승은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급망 차질과 과도한 재정정책으로 인한 수요가 만나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 자산가격 폭등은 1550년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1800년 경의 인플레이션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때문에, 191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1차대전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196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인위적인 통화, 재정적 지출이 타이트한 고용시장과 맞물리면서 근로자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했습니다. 달러가 금본위제를 포기하기도 했구요.

흑사병 이후 인플레이션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수요도 감소했고, 살아남은 농노들의 지위는 개선되었으며, 사람들이 다시 농사를 지으러 가면서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흑사병이 초래한 사회적 변동은, 귀족의 약화와 도시민의 성장을 불러와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1600년대에는 가격은 계속 상승했으나 아직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임금은 그렇게 빨리 상승하지 못했고, 이는 지방 대지주의 토지가치 상승과 도시 장인이 만드는 상공업제품 가격 상승을 불러왔습니다. 1600년대의 물가상승은, 당시의 '양적완화' 였던 신대륙발 은 수송용 갤리온 함대가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된 1600년대 후반에 가서야 정상화됩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여튼 역사는 사람들이 다시 일터에 돌아가고, 양적완화가 중단된다면 물가가 안정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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